첫사랑과의 섹스.
첫사랑과의 섹스.
첫사랑. 이 얼마나 가슴 뛰게 만드는, 설레이는 단어인가.
사랑하지만 감히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녀 앞에만 서면 나는 한없이 작아지는 존재처럼 느껴졌기에.
그녀 앞에서 나는 나의 단점, 부족함을 보았다.
그렇다. 그녀는 내게 그런 존재였다. 나의 결점, 불완전함을 투영하는.
별 것 아닌 것에도 먼저 말 걸어보고, 내게 별 관심 없어 보이는 그녀의 반응에 괜히 혼자 상처 받고.
그러기를 십 수년. 내 나이도 이제 30이 넘었다.
지금껏 잠자리 한 여자들도 여럿 하지만 내가 사랑한 여자가 있던가.
좋아했던 여자는 몇 있었지. 그래도 대부분은 내가 먼저 좋아했다기 보다 나를 좋아하는 여자였기에
그리고 나도 그렇게 싫지는 않았기에 같이 잠을 잤던 것이지.
그러다 어제 첫사랑과 같이 잠을 잤다.
내가 그녀에게 사랑 고백을 했기에? 아니.
그녀가 내게 관심이 없어 보여 나도 그녀를 내 가슴에서 놓아주었다.
그녀를 보며 투영한 내 결점들을 극복하고자 열심히 공부하고, 운동하고, 책도 읽고
회사 다니면서 이제 어느정도 괜찮은 삶을 살게 되었다.
그리고 회사 업무 일을 마저 정리하고, 영어 논문들 번역하다가 피곤해 침대에 누워 일정 관리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지 고민하던 중에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같이 밥 먹자고.
이 시간에?
오랜만이다. 몇 년만의 만남이던가.
만나서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몇 시간 동안 이야기하다가
그녀가 먼저 나 안 좋아했냐고 묻는다.
좋아했었지. 하지만 네가 나한테 관심 없어 보였기에 말 할 수 없었고 나를 위해 너를 내 가슴에서
놓아주는 선택을 했었다고.
그녀가 이제 그만 일어나자고 한다.
그리고 같이 길을 걷다가 키스할 분위기에 키스를 했다.
그녀가 나랑 자고 싶단다.
그래서 근처 모텔에 가서 잤다.
5시간에 걸친 섹스.
사랑하는 사람. 아니, 사랑했던 사람과의. 아니, 첫사랑과의 사랑. 아니, 첫사랑이었던 사람과의.
첫사랑이었던 그녀를 아주 많이 사랑했던 과거에 그녀와 잤었다면 어땠을까.
첫사랑이 이제는 과거가 되어버린 그녀와의 잠자리는 마일드한 사이키델릭 느낌을 줬다.
그 십수 년간의 세월을 돌아보게 만든다고 할까.
같이 잠을 자고 밖에 나와 그녀와 헤어지고 집에 걸어가며 생각한다.
세상에 화를 낼 것도 없고, 걱정도 없다. 그렇다. 나는 자신감에 차 있다.
하지만 자신감이 넘쳐 흘러 주체할 수 없는 상태와는 다르다. 이것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자신감이다.
비로소 나는 나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세상은 결국 사건의 발생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달려있다.
그것이 전부다. 삶에 대한 태도, 마음가짐.
그녀와 나는 연인 사이로 발전했는가? 아니.
세월이 흘러 그녀는 아름답지 않아서? 아니. 그녀는 여전히 아름답다.
그녀와 나의 경제력 차이가 많이 나서? 아니. 우리 모두 유학파 출신이다. 부자의 기준을 경제력만으로
한정한다면 그녀와 나 모두 가난함과는 거리가 멀다. 각자의 부모님의 재력을 논하지 않더라도.
그러면 왜 그녀와 연인 사이로 발전하지 않았는가? 내가 사랑했던 건 과거의 그녀였고
그녀를 사랑했던 사람은 과거의 나다. 서로를 향한 마음이 안타깝게도 어긋난 시간대에 도착했을 뿐.
운명의 장난 같은 것이 아닐까 한다. 대다수 사람들의 첫사랑은 서로를 향한 마음이 어긋난 시간대에
도착하지도 못하고 첫사랑으로 남겠지. 나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난 첫사랑과 잠을 잤다.
그리고 알게 됐다. 그녀는 내 첫사랑이었다는 것을. 그녀를 사랑한 것은 과거의 나였다는 것을.
나는 이미 늦은 편지를 받아버린 것이라는 것을.
인생은 어떻게 흘러갈지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