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며 불현듯 찾아오는 막연히 자살하고 싶다는 감정과 생각들.
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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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5 01:28
살아가며 불현듯 찾아오는 막연히 자살하고 싶다는 감정과 생각들.
앤쏘니 보데인.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돈 걱정없는 삶을 살았던 그는 프랑스의 어느 한 고급 호텔에서 이 세상과의 영원한 작별을 스스로 선택했다.
누군가는 그가 내린 결정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지만 난 이해한다.
그의 젊은시절 극심한 우울증이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그를 놓아주지 않고 있던 것일까.
전세계를 여행하며 좋은 것을 먹고 좋은 곳에 머물면서도 행복에 취하지 않고 슬픔에 젖어 있다는 것.
이 세상의 부조리와 부당함에 슬픔은 분노를, 하지만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에는
자신이 너무나도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에서 그는 다시 우울함에 빠졌을 것이라.
누구보다 인류에 대한 애정이 깊었던만큼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만난 슬픈 운명을 짊어진 이들에게서
그는 그들의 웃음에서 웃음이 주는 행복보다 그 웃음 뒤에 있는 그들의 힘든 인생에 슬픔을 느꼈겠지.
나 또한 그런 감정을 느꼈다. 그가 캄보디아 여행에서 느꼈을 비슷한 감정.
캄보디아의 강변 쓰레기장 더미 위에서 집을 짓고 하루 1달러로 살아가는 아이들. 아이들! 신발도 신지 않고 외국인만 보면 구걸하는 어린 아이들을!
많은 유럽인들이 값싼 헤로인과 대마초, 술에 취하기 위해 배낭여행을 오는 이 아시아의 한 가난한 나라는 이런 광경을 목도하고 더이상 휴양지가 아니었다.
그들에게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나는 하루에 수 백달러에 달하는 호텔에서 매일 아침 신선한 과일이 양껏 차려진 조식을 먹고 마사지를 받으며
점심에는 프랑스 요리를 먹으러 나간다. 차에 올라 레스토랑까지 가는 길 위에서도 난 수 많은 구걸하는 아이들, 팔이나 다리가 없는 장애인들을 본다.
나는 이 나라에서 나의 존재가 범죄처럼 느껴진다.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직원은 구걸하는 어린이에게 돈을 주어봤자 그 돈은 그가 아닌 그 지역 갱단에게 들어가니 구걸하는 아이에게 돈을 주지 말라고 조언한다.
아! 기구한 운명이여. 나는 어쩌란 말인가.
나는 몇 일 더 머물려던 앞전의 계획을 취소하고 업무가 끝나자마자 바로 귀국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나는 슬픔에 둘러싸여진채로 행복할 수 없다.
앤쏘니 보데인,
그는 그의 막대한 재력조차 그가 경험한 이 세상의 모든 슬픔을 그의 가슴에 담기에 터무니 없다는 것에 스스로의 부족에 책망했을지도 모르지.
그는 불공평함, 부조리, 고통에서조차 행복하기 위해서 웃기를 선택한 이들을 자신과 비교하면서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세상이 더이상 즐겁고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고 이 분노는 이내 세상을 향한 환멸만이 남아있다면.
그가 이 세상과의 작별을 고하기로 마음 먹게 된 것은 인류를 향한 그의 사랑이 너무 컸기 때문이었을까.
많은 사람들의 고통과 슬픔을 그의 가슴에 품어내기에 그는 그만큼 강하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면 그의 우울증이 그를 이런 선택에 이르도록 만든 것일까.
그는 더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에게 왜 그랬냐고 물어볼 기회도 없겠지.
하지만 나도 세계여행을 다니며 많은 슬픔과, 고통, 사회의 부조리와 부당한 대우를 당하는 약자들을 보았고
이를 해결하기에는 너무나도 복잡하게 꼬여버린 그들이 속한 사회에서 나 또한 길을 잃은 경험이 있기에
나는 그가 왜 이 세상과의 작별하기로 선택했는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
조금 덜 사랑하고 그래서 조금 덜 슬퍼했다면,
아직도 그는 살아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는 그럴 수 없었겠지.
그건 앤써니 보데인이 아닐테니까.
Farewell Anthony bourdain.
앤쏘니 보데인.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돈 걱정없는 삶을 살았던 그는 프랑스의 어느 한 고급 호텔에서 이 세상과의 영원한 작별을 스스로 선택했다.
누군가는 그가 내린 결정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지만 난 이해한다.
그의 젊은시절 극심한 우울증이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그를 놓아주지 않고 있던 것일까.
전세계를 여행하며 좋은 것을 먹고 좋은 곳에 머물면서도 행복에 취하지 않고 슬픔에 젖어 있다는 것.
이 세상의 부조리와 부당함에 슬픔은 분노를, 하지만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에는
자신이 너무나도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에서 그는 다시 우울함에 빠졌을 것이라.
누구보다 인류에 대한 애정이 깊었던만큼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만난 슬픈 운명을 짊어진 이들에게서
그는 그들의 웃음에서 웃음이 주는 행복보다 그 웃음 뒤에 있는 그들의 힘든 인생에 슬픔을 느꼈겠지.
나 또한 그런 감정을 느꼈다. 그가 캄보디아 여행에서 느꼈을 비슷한 감정.
캄보디아의 강변 쓰레기장 더미 위에서 집을 짓고 하루 1달러로 살아가는 아이들. 아이들! 신발도 신지 않고 외국인만 보면 구걸하는 어린 아이들을!
많은 유럽인들이 값싼 헤로인과 대마초, 술에 취하기 위해 배낭여행을 오는 이 아시아의 한 가난한 나라는 이런 광경을 목도하고 더이상 휴양지가 아니었다.
그들에게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나는 하루에 수 백달러에 달하는 호텔에서 매일 아침 신선한 과일이 양껏 차려진 조식을 먹고 마사지를 받으며
점심에는 프랑스 요리를 먹으러 나간다. 차에 올라 레스토랑까지 가는 길 위에서도 난 수 많은 구걸하는 아이들, 팔이나 다리가 없는 장애인들을 본다.
나는 이 나라에서 나의 존재가 범죄처럼 느껴진다.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직원은 구걸하는 어린이에게 돈을 주어봤자 그 돈은 그가 아닌 그 지역 갱단에게 들어가니 구걸하는 아이에게 돈을 주지 말라고 조언한다.
아! 기구한 운명이여. 나는 어쩌란 말인가.
나는 몇 일 더 머물려던 앞전의 계획을 취소하고 업무가 끝나자마자 바로 귀국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나는 슬픔에 둘러싸여진채로 행복할 수 없다.
앤쏘니 보데인,
그는 그의 막대한 재력조차 그가 경험한 이 세상의 모든 슬픔을 그의 가슴에 담기에 터무니 없다는 것에 스스로의 부족에 책망했을지도 모르지.
그는 불공평함, 부조리, 고통에서조차 행복하기 위해서 웃기를 선택한 이들을 자신과 비교하면서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세상이 더이상 즐겁고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고 이 분노는 이내 세상을 향한 환멸만이 남아있다면.
그가 이 세상과의 작별을 고하기로 마음 먹게 된 것은 인류를 향한 그의 사랑이 너무 컸기 때문이었을까.
많은 사람들의 고통과 슬픔을 그의 가슴에 품어내기에 그는 그만큼 강하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면 그의 우울증이 그를 이런 선택에 이르도록 만든 것일까.
그는 더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에게 왜 그랬냐고 물어볼 기회도 없겠지.
하지만 나도 세계여행을 다니며 많은 슬픔과, 고통, 사회의 부조리와 부당한 대우를 당하는 약자들을 보았고
이를 해결하기에는 너무나도 복잡하게 꼬여버린 그들이 속한 사회에서 나 또한 길을 잃은 경험이 있기에
나는 그가 왜 이 세상과의 작별하기로 선택했는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
조금 덜 사랑하고 그래서 조금 덜 슬퍼했다면,
아직도 그는 살아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는 그럴 수 없었겠지.
그건 앤써니 보데인이 아닐테니까.
Farewell Anthony bourdai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