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잃음으로써 무엇을 얻었는가.

Philosophical walk

나는 잃음으로써 무엇을 얻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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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SSD의 용량이 부족하여 손수 업그레이드를 하면서
그동안 안 보였던 저장공간이 부팅 시스템 설정에서 보이기에
모조리 다 아무 생각 없이 포맷 했다.
그리고 나서 컴퓨터를 잘 사용하고 회사 업무를 하기 위해 외장 하드를 들어가려는데
비밀번호가 걸려 있지 않고, 모든 파일은 삭제 되어있다.
그 전에 사용하던 SSD 또하 마찬가지로 모두 용량이 초기화 되어 있었다.
그렇다. 나는 머저리 같이 USB 허브가 이미 컴퓨터에 꽃혀 있는 상태에서 아무 생각 없이
OS 설치할 공간을 제외한 모든 저장장치를 삭제한 것이다.
컴퓨터 조립할 줄 아는 중학생 조차 하지 않을 실수를 내가 한 것이다. 그저 노트북 패드 사용하기 귀찮아서
USB 허브를 빼지 않았던 것이 이 사단을 만든 것이다.

포맷한 파일들은 복구할 수 없다. BITLOCKER에 이미 암호화 되어 있는 저장공간들이기에
복구 프로그램들도 먹히지 않는다. 비밀번호를 알고 있어도 포맷하면서 섹터가 다 엉켜서 비밀번호를 인식하지 못한다.
그렇다. 그간, 6개워간의 내 회사 업무 파일, 개인적인 사진과 글들, 일기, 엑셀과 워드 파일 들이 다 날아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는 백업을 늘 2개를 두기에 6개월 전의 백업 하드는 아직 살아있다.
그 후 6개월 간의 내 모든 노력과 기록, 회사 업무 파일들이 날아간 것이다.
대략 워드와 엑셀, 이미지 등으로 최소 천 여개. 페이지 수로는 5천 페이지 정도겠지.
나는 곧 퇴사를 할 예정이기에 회사에서 더 이상 많은 업무를 할당하지 않는다.
그리고 회사 자료는 따로 이미 회사 서버에 올라가 있다.
하지만 내가 수정한 것들, 참고 서류, 개선 사항, 시방서, 개인적인 프로젝트들은 모두 다 날아가버렸다.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단 한 번의 어처구니 없는 실수는 이런 엄청나게 고통스러운 시련을 선사할 수 있다.
아주 사소한 실수조차 말이다. 이런 실수를 내가 할 것이라고 예상 조차 못했다.
중학생 때 부터 컴퓨터를 스스로 조립하곤 하던 나였는데.

한 순간의 화재로, 한 순간의 사고로, 한 순간의 그 무엇이 되었건 그 사건으로 예상하지 못한 현실과 마주한 이들에게 나도 동질감을 느낀다.
비록 내가 이 일로 손과 밥을 못 쓰게 되는 환자가 되거나, 정신 이상자가 되거나, 누군가를 잃게 된 것도 아니기에
이러한 것들에 비하면 내가 겪은 일은 비교 대상도 될 수 없음을 안다.
하지만 6개월간의 내 시간과 노력이 단 한 순간, 길어봐야 2초 정도 뿐 이였던 내 별 생각 없이 한 행동에 모든 것이 날아가 버리니.
그 허탈감은, 내가 느낀 허무함과 나를 향한 분노는 나를 집어 삼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래도 난 여전히 6개월 전 백업을 가지고 있고, 살아 있으며, 내가 한 업무들을 대부분을 기억하고 있으니 다시 시작하면 된다.
6개월이 걸렸으니 이제는 한 번 해 본 일이기에 다시 회사에서 원본을 받아 금방 일 처리를 할 수 있겠지. 내가 한 번 써 본 글이기에
다시 써내려가는데는 이번에 더 적은 시간이면 충분하겠지.

실수라는 것은 앞으로 나아감에 필수적이다. 나 조차 이런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한다.
심지어 수 천번의 스카이다이빙을 하는 전문 스카이다이버도 이러한 실수로 자주 죽는다고 했다.
하늘에서 뛰어내리는 것이 너무 익숙해져서 낙하산을 펼치지도 않고 그냥 땅에 쳐 박혀 죽는다고 했다.
낙하산에는 문제가 없었다. 비상 낙하산에도 문제가 없었다. 그는 정말 너무나도 익숙한 환경에서
긴장조차 하지 않고 막연하게 낙하산을 가동 했다고 생각한 것일 거다. 마치 부엌에 가스불을 켜 놓았는지 안 켜 놓았는지
명확히 기억나지 않아 집으로 돌아가보면 어김 없이 꺼져 있는 것 처럼. 하지만 한 번이라도 꺼저 있지 않았다면
그 댓가는 엄청나다.
나는 그런 실수를 한 것이다. 어이 없는 실수를.

하지만 나는 이 일이 일어나고서도 멀쩡히 잘 살아있고 건강하다. 내가 할 일을 난 안다. 내 실수를 받아들이고 다시 시작하는 것.
내 이 실수는 다시 이런 실수를 절대 반복하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이어진다.
정말 중요한 글들, 파일들. 모조리 복구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을 때
나는 생각한다. 이렇게 쉽게 잃어버릴 것들이라면 과연 정말 내게 그토록 중요했을까.
이제는 이런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 백업 하드를 2개씩 둔다.
일어날 일은 일어났다. 이제 내가 해야할 일은 더 이상의 저항을 멈추고, 현실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다시 나아가는 것 뿐이다.
나의 지난 6개월의 시간은 사라진 것이 아니다. 그 동안 함께 잘 보내왔으나 언제 이별을 마주하게 될 지 몰랐을 뿐.
그 동안 행복했다고 말하고 싶구나. 그리고 이제 다시 나는 업무를 시작하고 다시 글들을 써내려 가야겠지.
이제는 명확히 백업 일정을 지키면서. 6개월에 한번씩 백업을 하던 내게 너는 일종의 벌을 준 것이다.
백업은 이제 한 달에 한번씩 한다.
인생이란 그런 것 같다. 네가 잘못하고 있다면 인생은 언젠가 네게 벌을 준다.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도록.
이 번 일은 내게 필요했던 벌 이였다.

인생 자체가 사이키델릭이다. 네 스스로 너를 돌아볼 용기가 있고, 삶을 대하는 태도에서 너를 무너뜨리려고 찾아온 고통이 우왕좌왕 한다면
너는 이미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5 Comments
4 보스터 2025.05.22 11:56  
사실 인생의 대부분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음. 그리고 그 중요하지 않은 것들로 우리는 인생을 채워가는 거고.
음과 양, 채워짐과 비워짐.
너는 잃었으니 이제 얻을 차례인 것이고. 너는 읾으로써, 그 읾음을 받아 들임으로써 아이러니하게도 쏟아진 네 그릇은 더 이상 비어있지 않고 새로운 것으로 다시 채워져있다.
3 스티브 2025.05.22 11:58  
명실상부 사이트 내 최고의 게시판.
3 스티브 2025.05.22 12:12  
마약 이야기는 이제 부차적인 것이고
살아가며 느끼는 감정, 생각을 공유하는 공간.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 데카르트

나는 나를 침묵하게 하려하는 존재에 무조건적인 저항을 한다.
인생은 소소한 것들과 사소하지 않은 것들로 채워진다.

이런 글, 아무런 글, 그저 생각나는 대로 적어내는 글.
마치 나만의 일기장과도 같은 공간이다. 이곳은.
대부분의 사람은 마치 그냥 살아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 인생이 아니기에
어쩌면 당연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일 수도 있겠다만.
여기에만 들어오면 정말로 소통이 가능한, 대화가 가능한 이들을 만나 기분이 좋다.
이 곳은 미국의 한인사회보다도 더 이국적인, 서구적인 공간이다.
7 책지팬티 2025.05.23 09:22  
잃은 것으로 끝나지 않고
잃음으로 인해 생긴 빈 공간으로 얻을 수 있는 그 다음까지 생각하는 자세가 부럽다
5 보지정권수련 2025.05.24 13:21  
필력은 레벨에 비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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