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얼마나 많은 기회를 놓쳤는가.
원시인
1
312
0
0
2024.03.10 20:11
나는 얼마나 많은 기회를 놓쳤는가.
그리고 그 많은 기회들을 놓친 것에 내가 갖고 있는 이 상실, 후회, 우울감은 타당하다고 볼 수 있는가.
나는 비트코인이 이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 얼마지나지 않고 비트코인을 채굴할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실제로 비트코인을 채굴했다.
하지만 컴퓨터의 팬들은 늘 최고의 속도로 CPU 또한 늘 성능의 100% 활용하고 있었기에 다른 작업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채굴 프로그램에 대한 나의 미심쩍인 감정은 이내 채굴하는 것을 중단하게 이르게 된다.
하루 몇 개 되지도 않는 비트코인들은 그 당시 별 의미가 없는 데이터 정도였기에 하드디스크를 포맷하고 포맷하는 과정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몇 년 후에 다시 만난 비트코인. 어느새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던 이 비트코인이 18불이 되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아무 생각이 없었다. 비트코인이 100불이 되었다는 기사를 읽었을 때 조차도 나는 프로그래머 친구와 18불 때 사지 않은 것에 대해 농담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비트코인 하나의 가치가 수 천만원이 됐지.
하루에도 몇 개씩 비트코인을 채굴할 수 있던 시기에 실제로 채굴 할 수 있던 기회, 비트코인을 초창기에 살 수 있었던 몇 번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사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 과연 내가 느끼는 이 후회는 타당한 감정일까.
타당하지 않다. 나는 지금 결과론적으로 보고있기 때문이다.
나는 비트코인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하나의 몇 백원 정도였던 비트코인을 채굴하면서
나는 분명히 비트코인의 가격이 몇 천원 정도가 되어도 기분 좋게 팔아 넘겼을 것이다.
자동차를 산다거나 집을 산다거나 옷을 산다거나 취미생활을 하는데에도 나는 비트코인이 5불이든 50불이든 팔았을 것이다.
결국 내가 갖고 있는 이 상실감은 과거의 내 행동이 가장 이상적으로 흘러갔더라면 가능했을 나의 모습과
현재의 나를 비교하면서 느끼는 감정으로 일종의 환상에 불가하다. 따라서 내가 느끼는 이 상실감 또한 허상에 지나지 않다.
나는 스스로 불행한 사람이기를 선택했던 것이다.
나는 테슬라가 상장하고 주식이 30불일 때 살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니콜라 테슬라를 좋아했던 나는 테슬라라는 기업을 알게 되고 테슬라 초창기에 주식을 살 수 있었지.
하지만 나는 사지 않았다. 그리고 현재의 테슬라 주식을 보면서 드는 상실감. 이 상실감 또한 허상이다.
내가 테슬라 주식을 초창기에 구입해 갖고 있더라도 월세를 내기 위해, 옷을 사기 위해,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테슬라의 주가가 내가 구입한 주가보다 높았다면 나는 미련없이 내가 가진 주식들을 팔았을테니까.
과정의 이해 없이 이상적으로 흘러갔더라면 어땠을 결과와 현재의 나를 비교하는 것은 늘 비참할 수 밖에 없다.
나의 이상과 나의 현실을 비교하며 느끼는 이 상실감 역시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 이상은 현실보다 우위하기때문이다.
결국 나는 헛된 생각으로 끊임없이 스스로를 고통속으로 내던지며 우울하기를 선택하고 있던 것이다.
아! 이 얼마나 비참했던 삶이였던가.
그리고 그 많은 기회들을 놓친 것에 내가 갖고 있는 이 상실, 후회, 우울감은 타당하다고 볼 수 있는가.
나는 비트코인이 이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 얼마지나지 않고 비트코인을 채굴할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실제로 비트코인을 채굴했다.
하지만 컴퓨터의 팬들은 늘 최고의 속도로 CPU 또한 늘 성능의 100% 활용하고 있었기에 다른 작업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채굴 프로그램에 대한 나의 미심쩍인 감정은 이내 채굴하는 것을 중단하게 이르게 된다.
하루 몇 개 되지도 않는 비트코인들은 그 당시 별 의미가 없는 데이터 정도였기에 하드디스크를 포맷하고 포맷하는 과정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몇 년 후에 다시 만난 비트코인. 어느새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던 이 비트코인이 18불이 되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아무 생각이 없었다. 비트코인이 100불이 되었다는 기사를 읽었을 때 조차도 나는 프로그래머 친구와 18불 때 사지 않은 것에 대해 농담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비트코인 하나의 가치가 수 천만원이 됐지.
하루에도 몇 개씩 비트코인을 채굴할 수 있던 시기에 실제로 채굴 할 수 있던 기회, 비트코인을 초창기에 살 수 있었던 몇 번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사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 과연 내가 느끼는 이 후회는 타당한 감정일까.
타당하지 않다. 나는 지금 결과론적으로 보고있기 때문이다.
나는 비트코인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하나의 몇 백원 정도였던 비트코인을 채굴하면서
나는 분명히 비트코인의 가격이 몇 천원 정도가 되어도 기분 좋게 팔아 넘겼을 것이다.
자동차를 산다거나 집을 산다거나 옷을 산다거나 취미생활을 하는데에도 나는 비트코인이 5불이든 50불이든 팔았을 것이다.
결국 내가 갖고 있는 이 상실감은 과거의 내 행동이 가장 이상적으로 흘러갔더라면 가능했을 나의 모습과
현재의 나를 비교하면서 느끼는 감정으로 일종의 환상에 불가하다. 따라서 내가 느끼는 이 상실감 또한 허상에 지나지 않다.
나는 스스로 불행한 사람이기를 선택했던 것이다.
나는 테슬라가 상장하고 주식이 30불일 때 살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니콜라 테슬라를 좋아했던 나는 테슬라라는 기업을 알게 되고 테슬라 초창기에 주식을 살 수 있었지.
하지만 나는 사지 않았다. 그리고 현재의 테슬라 주식을 보면서 드는 상실감. 이 상실감 또한 허상이다.
내가 테슬라 주식을 초창기에 구입해 갖고 있더라도 월세를 내기 위해, 옷을 사기 위해,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테슬라의 주가가 내가 구입한 주가보다 높았다면 나는 미련없이 내가 가진 주식들을 팔았을테니까.
과정의 이해 없이 이상적으로 흘러갔더라면 어땠을 결과와 현재의 나를 비교하는 것은 늘 비참할 수 밖에 없다.
나의 이상과 나의 현실을 비교하며 느끼는 이 상실감 역시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 이상은 현실보다 우위하기때문이다.
결국 나는 헛된 생각으로 끊임없이 스스로를 고통속으로 내던지며 우울하기를 선택하고 있던 것이다.
아! 이 얼마나 비참했던 삶이였던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