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osophical walk

<개 산책 : 내가 느끼는 감정과 생각은 얼마나 객관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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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얼마나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있는가.

 

나는 소형 푸들, 말티즈를 싫어한다. 나 또한 개를 키우는 사람이지만

이들조차 사랑하지는 않는다. 이들은 매우 시끄럽게 짖어대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들은 주인에게 기인한다고 생각하지만.)

 

누군가 내게 소형 푸들, 말티즈를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싫어한다고 답할 것이다.

중립적으로, 이 종들에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는다 하더라도 나는 싫어한다고 말할 것이다.

나는 소형 푸들, 말티즈라는 종의 전체 집단을 싸잡아서 싫어하는 감정을 갖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들을 싫어하는 이유는 그 전체 집단 중 시끄럽게 짖어대는 일부분 때문이다.

그 비율은 얼마나 될까. 시끄럽게 짖어대는 이 개들이 전체 집단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얼마나 되어야

내가 이들을 싫어하게 됨에 어느정도의 합당성을 지닐까.

 

사람은 고통, 안 좋은 기억, 부정적인 것들을 더 잘 기억한다. 이는 놀랄 것도, 슬퍼할 것도 없다.

우리는 그저 더 오래 생존하기 위해서는 이런 위험들을 더 빨리 학습하고 기억에 각인되도록 진화한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이 개들을 싸잡아 싫어하는 감정을 갖게 된 것은 이 종들의 전체적인 성향에서가 아닌, 내 개인적인 몇 몇의 부정적인 경험에서 그저 별 생각 없이 나는 그들 전체를 싫어하고 있던 것이 아닌가?

 

항공기가 10번에 1번 꼴로 추락한다면, 항공기는 전혀 신뢰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항공기의 추락 확률은 비행 300만 번의 1번 꼴 정도로 항공기는 아주 안전한 운송수단이라는 것에 합당성을 갖는다.

 

하지만 생사가 걸린 수술에서 생존확률이 90%인 경우는 어떨까. 혹은 50%라면. 10번 중 1번 꼴로 사망한다 거나, 10번 중 그 절반 꼴로 사망한다면. 그 둘이 어찌되었건 엄청 무서운 것은 매한가지다. 90%의 확률로 성공하는 수술조차도 10번 중 1번 꼴로 수술 실패로 사망한다는 이야기니까.

이런 상황에 이런 두려운 감정을 갖는 것은 합당한가.

합당하다. 판단에 감정이 참여하였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도 이런 상황에서 대부분 비슷하게 느끼고, 사안이 중대하기 때문이다.

90%의 수술 성공 확률은 매우 높은 수치이다. 이견 없이 이것도 합당하다. 하지만 내가 그 수술을 받아야 하는 당사자라면 이 높은 수술 성공 확률에서 합당성은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가 된다.

 

고정적이던 개 산책 시간을 여러 다른 시간대로, 자주 가던 산책길에서 새로운 동네로 다니면서 마주한 소형 푸들, 말티즈들의 수를 세고

그 중 짖어대는 이들의 비율을 보면 채 10%도 안된다. 놀랍게도 매우 낮다. 하지만 내가 주로 개 산책을 하던 고정적인 시간대인 출근 전, 퇴근 후 그리고 주로 거니는 산책길에서 만나는 이 짖어대는 이들의 비율은 앞도적으로 높다. 나는 그저 이들이 산책하는 동시간대에 산책 동선이 겹쳤을 뿐이다. 이제는 조금 더 내 감정과 생각에 명확해 질 수 있다. 나는 이들의 종 전체를 싫어하지 않는다.

짖어대는 비율은 전체에 얼마 되지 않음을 확인했으니까.

그저 출근 전과 퇴근 후 많은 사람들이 개를 데리고 산책 나오는 시간대, 비슷한 산책 동선에 나도 거기 있었을 뿐이다.

지극히 확률적인 문제였다.

내가 이 개들 전체 종을 향한 부정적인 감정은 실제보다 부풀려졌음을 이제 안다.

 

합당성은 문제가 내게서 멀어질수록 객관성을 갖으며, 문제의 중요도에 따라 쉽게 대답할 수 있거나 쉽게 대답할 수 없을뿐이다.

 

간단해 보이는 문제도 사실 간단하지 않은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그러나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기에 대충 판단하는 것을 선택한다. 따라서 별 볼 일 없는 문제에 별 볼 일 없는 답변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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