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와 태아를 떠나보내고 25/11/28

Philosophical walk

여자와 태아를 떠나보내고 25/11/28

3 나의생각 1 211 2 0
순식간에 만나버린 인연
갑자기 찾아온 아기
너무나도 길고 짧았던 3개월간의 시간들

6살 나이 차이도 온전하지 못한 내 정신도
시스템이 만들어 놓은 종이화폐가 부족하다는 현실도
다 필요 없다고
결혼하고 싶다고
세상에 안 되는 건 없고 같이 하면 다 할 수 있다고
자기는 생각보다 훨씬 강한 사람이라고
너무 많은 생각 하지 말고 자신을 봐달라고
멋진 말들을 서스럼없이 쏟아내던 사람

하지만 준비되지 않은 나는 겁부터 났다
돈이 다가 아니라면서 돈부터 생각한 나
불안정한 직업과 어린애 같은 나의 내면
혼자 지내는 삶에 익숙해져버려
결국 진짜 너를 알아봐주지 못했다
이상하리만큼 예민한 성격
시멘트처럼 굳어진 강박적인 루틴과 습관들
갑자기 생긴 아이마저 잘 키워보자고 했지만
결국 말을 바꿔 지우자고 말해버린 나

8주가 되어서야 결심하고 함께 갔던 병원
그 모든 상황과 스트레스 속에서 드러난
내 본모습
히스테리성 처럼 예민해지고 민감해지고
타인에게서 오는 작은 신호에도 거부감이 생기고
스스로를 파괴하려는 생각과 불확실함
낮은 자존감과 쓸때없는 아집들

8주라는 시간 동안 나는 계속 포기하기를 선택했다
약해진 내 모습을 받아주는 걸 확인하자
오히려 더 내 마음대로 굴었고
수술 다음 날에는 도저히 사람과는 같이 지낼 수 없다고
너라서가 아니라 누구와도 힘들다고
제발 준비된 사람을 만나라고
너의 청춘과 인생을 나 같은 인간에게 허비하지 말라고 말해버렸다

하지만 그런 말 너는 듣고 싶지 않았을텐데
너는 나보다 훨씬 더 힘들었을 텐데

임신 소식과 함께 살았던 지난 몇 주 동안의 살림을
이삿짐 아저씨가 정리하는 모습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두고간다는 물건이 유독많았던 너
마지막으로 데려다준다고 해도
그렇게 걱정되면 왜 나가라고 했냐는 물음에
나는 아무 대답도 못했다
네가 떠난 그날 아무 생각 없이 하루 종일 청소만 했다
그러다 밤에 목놓아 갓난아기처럼 텅빈 넓은집에서 펑펑 울었다

겪지 않아도 될 일들을 겪게 해서 너무 미안하다
무엇이 그리 힘들고 괴로웠길래
회복도 덜 된 너를 그렇게 내쫓듯 이별을 고했을까

너는 내가 떠나 보내 버렸고
8주된 아기는 얇은 고무관에 빨려들어가 사라졌다
나는 여전히 여기에 있다

1 Comments
13 satan 2025.12.08 17:47  
너무....무거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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