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있었던 일.

Dope Life

어제 있었던 일.

4 엘샤다이 5 84 10 0

여자 친구와 살던 집을 정리 하고 요즘은 어머니 집에 들어가서 살고 있다.
아파트 각 층마다 2세대만 있는데 앞집 사람은 본 적이 한번도 없다.
한 3주 전인가 부터 아파트 현관에 거의 항상 매일 A4 전단지가 붙어 있었다. 
어린이영어유치원. 태권도장 전단. 치과 전단. 치킨집 전단.... 거의 매일 붙어 있었다. 난 집에 들어가면서 항상 문 앞에 붙은 전단지를 떼어내면서

아니 왜 남의 집 대문에 맨날 이렇게 쓰레기를 붙여 놓지..그제도 어제도 오늘도 매일 붙어 있는 전단지 때문에 살짝 짜증이 나더라.
오늘 아침에 새벽 일찍 집을 나섯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데 비상구 계단문이 벌컥 열리더니 어떤 여자랑 눈이 마주쳤다.
여자가 황급히 문을 닫길래 아 전단지 붙이러 왔구나. 저사람이 매일 쓰레기를 문앞에 붙여놨구나 하면서 비상구 방화문을 잽싸게 다시 열었다.
여자는 급하게 계단을 내려 가고 있는데 뒤에서 내가 소리 쳤다.
저좀 보세요! 
여자가 멈칫 하더니 나를 돌아본다. 모자를 푹 눌러쓴 40대 초반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였다. 손에는 전단지가 한웅큼 들려있었다.
나도 몇계단 내려가서 
아니 왜 자꾸 남의집 문에다 이런걸 계속 붙이시는거에요. 하고 날카롭게 따져 물었다.

여자가 연신 허리를 굽히면서 말을 하는데....
워어어오우...어어어... 말투가 이상하다. 말을 제대로 못하는거 같았다. 자기도 모르게 수화를 하는거 같은데 내가 알아 들을 수가 없다.
배에 차고 있는 복대 주머니 같은 곳에서 장애인 카드를 꺼내서 보여준다.
청각 장애인 이였다.
연신 죄송하다는 듯이 허리를 굽혀 숙인다.
그러더니 복대 주머니에서 작게 접힌 종이를 또 꺼내서 보여준다.
예쁘지 않은 볼펜 글씨로
"장애가 있어 일자리를 구하는 게 너무 어려워 새벽에 전단지 붙이는 일로 아들 하나를 키우고 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순간 너무 울컥했다. 
아 시발....내가 왜 이렇게 어렵고 힘들게 살아 가는 사람한테 큰소리를 치려고 했을까..
너무 가슴이 먹먹해지고 나 자신이 미워졌다. 
그 아주머니께 정말 너무 미안했다. 내가 잘못한 건 아니지만 그 아주머니에게 가졌던 짧은 내 생각이 미웠다.
손짓으로 혹시 거기 주머니에 펜이 있냐고 물어봤다.
펜이 있다고 해서 잠깐 달라고 해서 그 아주머니가 나한테 보여줬던 접혀있던 종이를 펼쳐서 뒷면에 이렇게 써드렸다.

"아주머니...사는 건 늘 언제나 힘들어요. 그래도 용기 잃지 마세요.
그리고 때로는 아주 가끔은 생각지도 못한 좋은 일도 있어요.
오늘이 그날이에요."

지갑에서 가지고 있던 돈을 모두 다 꺼내서 종이 안에 넣어서 쪽지를 접어서 드렸다.
얼마인지 세어보진 않았는데 만원짜리 열 몇장 그리고 오만원짜리 대여섯장 되는거 같았다.
한사코 안받으려고 하는데 배에 차고 있는 복대 주머니에 쑥 넣어 주고 난 다시 바로 집으로 들어 가버렸다.

행여나...다른 집 문에 전단지 붙이러 다니시다가 인성 쓰레기 같은 인간들 만나서 슬퍼 하지 않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그 아주머니를 보는데 우리 형이 생각났다.
나의 형은 선천적 기형 뇌성마비1급으로 태어났다. 머리만 살아 있고 목 아래 몸 전체는 마비되고 뒤틀리고 자신의 의지로는 아무것도 할수있는게 없었다.
나의 하루 일과중 하나는 학교에 다녀 오면 가방 던져 놓고 형이 바지에 싼 똥오줌을 치우는 일이였다.
똥오줌을 치워주고 옷을 갈아 입히고 나면 밥을 먹여 줘야 했고 
한창 사춘기때 그런 일상들이 나에겐 너무 지옥이였었다.
어릴 땐 형의 똥치우는게 너무도 싫어서 형이 똥을 쌀때 마다 형을 마구 때렸다.
형은 반항도 못하고 내가 때릴 때 마다 슬픈 눈을 했다.
나이가 들어서는 근육이 너무 뒤틀려서 몰핀같은 마약성 진통제가 없으면 숨쉬는거 조차 안되었다.
그래서 우리집엔 늘 약통에 마약이 가득했었다.

그리고 몇 년 전...
형이 갑자기 날 부르더니 OO아... 형 부라보콘 아이스크림 한 개만 사다 줄 수 있니? 
찬거 싫다고 잘 먹지도 않던 아이스크림을 갑자기 왜?....
암튼 그래서 아이스크림을 몇개 사와서 먹여주고 집을 나서려는데 형이 나를 부른다.

OO아 형이 너한테 늘 미안해 하고 있는 거 알지?
사랑한다 내 동생 이러길래...
좀 뜬금없다 생각이 들었지만 그냥 건성으로 나도 응 그려 알았어. 티비 보고 있어 나갔다 올게 
그리고 문을 나선 게 형과의 마지막 이별 이였다.
집에 왔을 때 형은 싸늘하게 식어 이 세상과 이별을 하였고 부모님은 아직 귀가 하지 않으셨다..
평생을 육체적 고통에 몸부림 치느라 얼굴은 항상 일그러진 표정만을 지었는데 그 순간만큼은 내가 본 형의 얼굴중에 가장 편안 해보였다.


오늘은 형이 많이 보고 싶네요.
고통없는 어딘가에서 편히 쉬시다가 가끔 한번씩만이라도 나 보러 꿈속에 와주세요.... 
 

5 Comments
11 사랑해 06.01 15:04  
아름다운 인생
13 sober 06.01 20:21  
인생이 쉽지 않은 것은 집이 없어서, 차가 없어서,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훗날 후회로 남게되는 순간의 감정들을 컨트롤하기 어렵기 때문인 것 같다.
10 Poomoon 06.01 22:09  
명복을 빕니다, 일찍 떠나신 좋은 분들 중에는 왜 항상 좋은 사람들이 많을까요
이런 좋은 글을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꼭 평화를 찾길 바래요
6 스무스코코 06.02 18:30  
슅..후
3 linchen 06.02 20:12  
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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